한국 문화 망한다던 일본 문화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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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2 10:26
대박노
지금은 일본 애니, 게임, 노래를 너무 자연스럽게 소비해서 잘 체감이 안 되는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는 공식적으로 거의 막혀 있었음.
물론 막는다고 사람들이 안 본 건 아니었음.
일본 만화는 제목과 등장인물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서 들어왔고,
일본 음악이나 애니는 복사 테이프 불법 비디오 위성방송 등을 통해 이미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음.
한마디로 공식 수입만 금지됐을 뿐 일본 문화 자체가 없는 상태는 아니었음.
오히려 음지에서 출처를 숨긴 채 소비되는 기묘한 상황이었음.
그러다가 1998년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추진함.
당시 대통령은 대충 “일본 문화가 들어온다고 한국 문화가 무너질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입장이었음.
실제로 1998년 4월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고 지시했고,
같은 해 10월 오부치 총리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함.
그러나 당시 분위기는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살벌했음.
“일본 문화가 들어오면 한국 가요와 영화는 전멸한다.”
“청소년들이 일본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에 물든다.”
“경제도 일본에 밀리는데 문화까지 식민지가 된다.”
“방송까지 개방하면 한국 연예산업은 끝난다.”
이런 식의 문화 식민지론이 진지하게 나왔음.
1990년대 일본은 게임,만화,애니,음악을 전부 세계적인 산업으로 키운 아시아 유일의 문화 초강대국에 가까웠음.
게임에서는 닌텐도,세가,소니가 세계 콘솔시장을 이끌었고,
슈퍼마리오, 파이널 판타지, 스트리트 파이터,포켓몬스터 같은 작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음.
만화와 애니에서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세일러문, 에반게리온, 지브리 작품들이 아시아 전역을 휩쓸던 시기였음.
음악시장도 세계 최대급 규모였고, 엑스재팬,비즈,아무로 나미에 같은 가수들이 음반을 수백만 장씩 팔았음.
일본드라마와 패션 역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젊은 층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음.
이러한 영향력은 당시 한국 대중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음.
일본 문화를 공식적으로 막아놓은 상태에서도 한국 대중문화가
이미 일본 문화를 상당히 따라 하고 있었다는 것임.
일본 음반과 방송이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다 보니 대중이 원작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이 틈을 이용해 일본 노래의 멜로디나 일본 방송의 연출 구성을 가져오는 일이 반복됐음.
한국의 1990년대 대중가요와 TV 드라마가 일본 작품을 모방했다는 표절 논란도 끊이지 않았음.
대표적으로 1996년 김민종의 〈귀천도애〉는 일본 밴드 튜브의 노래를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활동이 중단됐고
룰라의 〈천상유애〉도 일본 그룹 닌자의 곡을 베꼈다는 논란으로 홍보 활동을 멈췄음.
이런 사례는 당시 가요계의 일본 문화 표절 관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았음.
그러니까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의 한국은 일본 문화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가 아니었음.
대중은 불법 비디오와 복사 테이프를 통해 일본 문화를 소비하고,
제작자들은 일본의 유행을 몰래 참고하거나 베끼면서도 정작 원작은 공식적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였음.
즉 일본 문화는 금지돼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이미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음.
다만 정식 개방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음.
이전까지는 일본 문화를 음지에서 제한적으로 소비하거나 일부 요소만 가져오는 수준이었다면,
개방 이후에는 일본의 영화,음악,만화가 한국 시장에 정식으로 들어와 국내 콘텐츠와 직접 경쟁하게 되는 것이었음.
게다가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경제와 문화산업 모두 체력이 약해진 상태였음.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일본 문화 개방은 단순히 외국 콘텐츠 몇 개가 들어오는 일이 아니라,
체급이 훨씬 큰 일본 문화산업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일처럼 받아들여졌음.
괜히 일본 문화가 들어오면 한국 영화,가요,만화가 그대로 잠식당할 거라는 공포가 괜히 나온 건 아니었음.
실제로 개방 직후에는 실제로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4월 이야기 같은 일본 영화가 인기를 끌었음.
“오겡끼데스까”가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고, 엑스재팬, 라르크 앙 시엘,아무로 나미에 같은 일본 가수들도 마니아층을 형성함.
그래서 초반만 보면 정말 일본 문화가 한국을 쓸어버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음.
그런데 실제 결과는 당시의 예상과 상당히 달랐음.
일본 영화와 음악이 국내에서 일정한 팬층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한국 시장 전체를 잠식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음.
일본 문화가 한국 문화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적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것에 가까웠음.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일부 젊은 층 사이에서 J-POP을 듣는 것이
세련되고 힙한 취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음.
글레이, 루나시 같은 일본 록밴드와 우타다 히카루, 하마사키 아유미,나카시마 미카 등을 찾아 듣는 것은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남들이 잘 모르는 문화를 먼저 접한다는 일종의 마니아 감성으로 여겨졌음.
하지만 이런 흐름이 한국 가요를 밀어낼 정도의 대중적인 열풍으로 확대되지는 않았음.
결국 일본 문화는 한국 문화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해외문화 가운데 하나의 취향으로 정착했음.
오히려 같은 시기에 한국 영화,드라마,가요 산업도 빠르게 성장했음.
쉬리 같은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하고, 보아가 일본 오리콘 차트 정상에 오르고,
이후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한류가 터졌음.
물론 일본 문화 개방 하나 때문에 한류가 생겼다고 볼 수는 없음.
한국 콘텐츠 산업의 투자 확대, 방송,영화 제작 능력 향상, 아이돌 시스템 발전 등 여러 원인이 있었음.
다만 일본 문화를 막아놓고 버티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식 유통과 경쟁, 공동제작과
상호 진출이 가능한 구조로 바뀐 것은 분명했음.
그리고 개방이 계속 순조롭게 진행된 것도 아니었음.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반일 여론이 커지면서
한국 정부는 추가 개방을 무기한 중단함.
이후 영화음반 게임 분야의 사실상 전면 개방은 다음 정권인 2004년 1월에 이루어졌음.
따라서 “DJ가 일본 문화를 완전히 개방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DJ 정부가 1~3차 개방으로 빗장을 대부분 풀었고 다음 정부가 4차 개방을 마무리했다고 보는 게 맞음.
결과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우려했던 ‘한국 문화산업 멸망’은 일어나지 않았음.
일본 대중음악이 전면 개방된 뒤에도 국내 시장에 미친 충격은 제한적이었고,
반대로 K팝은 일본 시장에서 훨씬 큰 성공을 거두게 됐음.
개인적으로 일본 문화 개방은 상당한 자신감이 필요한 정책이었다고 봄.
일본 문화가 강하다는 이유로 계속 막아두는 것은
결국 한국 문화가 경쟁력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음.
그리고 막상 문을 열어보니 한국 문화가 무너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음.
일본 문화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고, 한국 문화산업은 본격적인 경쟁을 거치며 오히려 더 성장했음.
일본 문화 개방이 오늘날 한국 문화산업의 성공을 전부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 문화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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