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색X랜드가 아니라 잉글랜드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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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9 14:25
돌잔치앤가반나
현재 영국을 이루는 영토의 핵심인 브리튼 섬에는 원래는 웨일스인으로 분류되는 켈트계열 민족들이 주로 살았었다
허나 게르만족의 이동이라는 5~7세기의 거대한 흐름앞에 브리튼섬도 피해갈 수 없었다
여기에서 초창기에 이주를 한건 앵글족이 먼저였고 이후에 색슨족이 이주한다
이러한 대이동에 원래 브리튼에 살던 웨일스인들은 쫓겨나고 앵글족과 색슨족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나라가 갈리는데
그 유명한 "왕좌의 게임"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칠왕국 시대가 열린다
보다시피 색슨족들은 자신들의 민족을 지칭하던 말인 seax(색스)에서 따와서 나라 이름을 정하는데
에섹스(동쪽 색스), 서섹스(남쪽 색스), 웨섹스(서쪽 색스)로 나뉘게 된다
7왕국이 성립되던 시기엔 사라졌고 지명으로만 남은 미들섹스(중앙 색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북쪽 색스는 없었다)
앵글족들은 북부와 동쪽에 거대한 영역을 차지했지만 안타깝게도 800년경부터 시작된 바이킹의 침입부터 상황이 틀어진다
(바이킹들의 주요 침입로 및 색슨족과 데인족들이 영토를 반갈죽한 모습)
800년경부터 시작된 바이킹들의 대공세에 앵글족의 노섬브리아, 이스트 앵글리아 등은 덴마크 바이킹인 데인족에게 넘어갔지만
색슨족의 왕국들은 웨섹스 왕국을 중심으로 힘을 재편하며 확장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게 통일을 진행한 웨섹스 왕국이었지만
통일을 하면서 새롭게 재편된 왕국을 색스랜드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왕(rex Anglorum)으로 선언한다
색슨족들이 주도하여 통일을 했지만 이름은 앵글족을 따서 만들어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730년경 노섬브리아의 베다가 쓴 잉글랜드의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
앵글족이 브리튼 섬에 먼저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700년경 이전부터 해당 지역을 '앵글족의 땅' 이란 식으로 정의하기 시작했었고
웨섹스가 통일을 한 시점부터는 Anglorum, Angelcynn 등의 단어는 단순한 앵글족을 의미하는게 아닌
잉글랜드라는 땅과 그 땅에 사는 민족 공동체들을 아우르는 단어가 된 것이었다 (역시 선점 효과가 중요)
이러한 경향 때문에 색슨족이 통일한 이후에도 브리튼 땅을 아우르는 명칭은 잉글랜드로 쓸 수 박에 없었던 것
(1030년경 크누트 대왕의 북해제국)
또한 이러한 웨섹스 왕국의 통일조차 100년 정도가 지난 1016년에
덴마크 왕국의 크누트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1042년에 다시 웨섹스 왕조가 되찾았지만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의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어
자신들도 똑같이 앵글족마냥 데인족과 노르만들에게 휘둘리는 입장이었기에
색스랜드로 이름을 포팅하는 작업을 하기도 전에 주도권을 잃었기에
아쉽게도 즐거움이 넘칠것 같은 색스랜드가 아니라 영영 잉글랜드로 남게 되어버린다
(참고로 영국의 색슨과 독일의 작센은 동일한 뿌리이고 독일에선 작센 왕국을 세웠고 현재에도 라이프치히가 있는 작센주라는 이름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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