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장평대전에서 40만이 생매장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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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 20:04
네이마르로
만화에서 표현된 장평대전
장평대전은 전국시대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염파의 지구전에 휘말려 영 재미를 못보던 진나라가 세작들을 이용해 염파를 모함, 머저리같은 헛똑똑이 조괄을 지휘관으로 교체시킨후
진나라 최강의 카드인 백기를 꺼내들어 조나라군을 박살내었다.이때 백기는 40만에 달하는 조나라군을 사로잡았는데 백기는 이들중 240명 가량의 소년병들만 풀어주고는 나머지 군사들을 모두 갱살하였다
(사기 백기열전의 기록)
이는 단일 사건으로는 전근대에서 손꼽히는 학살로서 후대에도 길이길이 욕먹는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무리 인구빨 쩔어주는 중국이라도 그 고대시대에 전쟁한방에 40만의 포로를 학살했다고 곧이곧이 믿기는 어렵다. 그럼 실제 장평대전의 학살은 있었고 만약 있었다면 어느정도의 규모였을까?
일단 중국의 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 모두 장평대전의 학살은 실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는 장평대전의 격전지로 추측되는 가오펑시에 발굴된 대규모 유골들 때문이다
가오펑시에 발굴된 유골들
이때 발굴된 유골들만 수백구에 달하며 연대측정 및 같이 출토된 유물의 검증결과 대부분이 전국시대의 유골로 인정되었다.
다만 그 규모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의 경우 굉장히 부정적인데
첫번째로 유골들이 발굴된 일대가 40만을 묻었다기에는 지나치게 좁은점
두번째는 유골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긴하나 그 숫자가 40만이라기엔 터무늬없이 적은점
세번째는 대부분의 유골들이 전투중에 전사한 흔적이 보인다는점
이러한 점들을 들어 실제 장평대전의 학살규모는 40만이 될수없으며 그나마도 대부분의 희생자는 전투과정에서 죽은것이며 포로학살은 규모가 더 축소될거라 주장한다
다만 유골들중 일부는 두팔이 뒤로 묶인채 사망했거나 목 뒷덜미에만 상흔이 있는등 명백한 포로살해의 흔적이 남아있어 포로학살 자체는 실제로 있었다고 평가되며
고고학적 흔적으로 보았을때 장평대전은 1만 이상의 전사자와 수백~ 수천단위의 포로학살이 있었다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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